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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건강 관리: 목, 허리, 눈, 손목

May 17, 2021

essayproductivity

작년 가을, 오른쪽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뻐근한 느낌이 2주째 안 사라졌다. 처음에는 잠을 잘못 잔 줄 알았다. 베개를 바꿔봤다. 안 나았다. 스트레칭을 좀 해봤다. 여전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에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데 목에서 "뚝" 소리가 나면서 통증이 확 왔다. 그 길로 정형외과에 갔다.

X-ray를 찍었다. 의사가 모니터에 목뼈 사진을 띄워놓고 말했다. "목디스크 초기예요. 경추 5-6번 사이 디스크가 좀 튀어나왔네요." 입사한 지 1년 됐을 때였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

돌이켜보면 원인은 뻔하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모니터를 봤다. 회사에서 8시간, 집에서 2~3시간 더. 퇴근하고 사이드 프로젝트 하거나 기술 블로그 글 읽으면서 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세가 나빴다. 모니터를 내려다보는 자세로 코딩했다. 노트북을 데스크 위에 그냥 올려놓고, 외장 키보드 없이 노트북 키보드를 썼다. 거북목이 심해지는 건 당연했다. 회사 의자가 나름 좋은 건데, 등받이에 기대는 법이 없었다. 항상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모니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운동은 안 했다. "운동해야지"라고 매주 생각했고 매주 안 했다. 대학교 때까지는 가끔 풋살을 했는데, 입사하고 나서는 퇴근하면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정형외과에서 들은 말#

의사가 말했다. "이 나이에 이 정도면, 2~3년 뒤에는 많이 심해질 수 있어요. 지금부터 관리 안 하면." 물리치료를 2주간 받았다. 전기 치료, 도수치료. 도수치료 받을 때 목 뒤쪽을 누르는데 진짜 아팠다.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물리치료사가 모니터 높이를 물어봤다. "눈높이보다 낮죠?" 맞았다. "모니터를 눈높이에 맞추세요. 그리고 의자 높이를 조절해서 팔꿈치가 90도가 되게 하세요." 기본적인 인체공학 세팅인데, 그전까지 한 번도 신경 쓴 적 없었다.

바꾼 것들#

병원 다녀온 후에 바꾼 것들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모니터 세팅. 회사에 27인치 외장 모니터가 있었는데, 모니터 암에 연결해서 눈높이에 맞췄다. 노트북은 서브 모니터로 쓰고, 외장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결했다. 이것만으로도 자세가 크게 달라졌다. 모니터를 올려다보지도, 내려다보지도 않고, 정면을 바라보게 됐다.

집에서도 노트북 거치대를 샀다. MOFT 접이식 거치대인데, 1만 원대에 꽤 괜찮다. 외장 키보드는 회사에서 쓰던 것과 같은 모델을 하나 더 샀다.

스탠딩 데스크. 회사에 전동 스탠딩 데스크가 있길래 신청했다. 처음에는 하루 종일 서서 일하려고 했는데, 30분 만에 다리가 아파서 포기했다. 지금은 앉았다 서기를 반복한다. 대략 50분 앉아있다가 10분 서있는 식. 타이머를 맞춰놓는다. 맥에 Stretchly라는 앱을 깔았는데, 시간마다 알림을 줘서 괜찮다.

스트레칭. 물리치료사가 알려준 목 스트레칭을 하루에 세 번 한다. 아침, 점심 후, 퇴근 전.

목을 왼쪽으로 천천히 기울이고 10초, 오른쪽으로 10초.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10초, 뒤로 젖히고 10초. 그리고 어깨를 으쓱 올렸다가 탁 떨어뜨리는 걸 10번. 전부 해도 2분도 안 걸린다. 근데 이 2분이 은근히 차이가 난다. 안 하면 오후 4시쯤 목이 뻣뻣해지는데, 하면 그게 확실히 덜하다.

손목. 손목은 아직 큰 문제가 없는데, 예방 차원에서 손목 받침대를 쓴다. 그리고 마우스를 버티컬 마우스로 바꿨다. 로지텍 MX Vertical.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일주일이면 적응된다. 손목이 비틀리지 않는 각도로 잡게 되어있어서, 장시간 사용해도 손목에 무리가 덜 간다.

. 20-20-20 규칙이라는 게 있다. 20분마다 20피트(약 6미터) 떨어진 곳을 20초간 바라보기. 솔직히 이걸 정확히 지키지는 못한다. 근데 의식적으로 가끔 창밖을 보려고 한다. 모니터만 빤히 보다가 먼 곳을 보면 눈의 피로가 확 풀리는 게 느껴진다.

모니터 밝기도 조절했다. 이전에는 밝기를 거의 최대로 놓고 썼는데, 주변 조명에 맞게 낮췄다. macOS의 True Tone 기능도 켜놓았다.

허리#

목 다음으로 걱정되는 건 허리다. 목디스크 진단받고 나서 자세를 의식하기 시작했는데, 의식하지 않으면 금세 원래대로 돌아간다. 특히 집중해서 코딩할 때. 버그를 추적하다 보면 어느새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져 있고, 등이 구부러져 있다.

허리를 위해서 한 건 의자 세팅이다. 회사 의자가 허먼밀러 에어론이었는데 (이직 때 이것 때문에 회사를 고른 건 아니지만, 솔직히 체크리스트에 있긴 했다), 이 의자도 제대로 세팅 안 하면 소용없다. 등받이 텐션, 좌석 깊이, 팔걸이 높이를 전부 조절했다. 유튜브에 "에어론 세팅법"이라고 검색하면 영상이 많다.

집 의자는 그렇게 좋은 게 아니어서, 허리 쿠션을 하나 붙여서 쓴다. 완벽하지는 않은데 없는 것보다 낫다.

운동#

정형외과 진단을 받고 나서야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 피트니스 센터를 등록했는데, 한 달 다니고 안 갔다. 퇴근 후에 헬스장까지 가는 게 너무 귀찮았다. 동기부여가 부족했다.

그 다음에 시도한 건 클라이밍이었다. 동기가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이건 꽤 재미있었다. 문제를 푸는 느낌이 있어서 개발자한테 맞는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그런 면이 있다. 루트를 관찰하고, 어떤 순서로 올라갈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성공하면 성취감이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간다.

클라이밍을 시작하고 나서 어깨와 등 근육이 확실히 좋아졌다. 코어 힘도 생기니까 앉아있는 자세도 덜 무너진다. 의사도 6개월 뒤 경과 관찰에서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한 가지 팁이 있다면, 운동은 재미있어야 지속된다. 건강을 위해 억지로 하는 운동은 오래 못 간다. 헬스장이 안 맞으면 클라이밍이든 수영이든 배드민턴이든, 일단 재미있는 걸 찾는 게 우선이다. 나는 클라이밍이 맞았고, 동료는 크로스핏이 맞았고, 다른 동료는 아침 조깅이 맞았다. 정답은 없다. 그냥 꾸준히 할 수 있는 거면 된다.

출퇴근 때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걷는 것도 효과가 있다. 사소하지만, 하루에 20분 걷기가 추가된다. 점심시간에 회사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도 좋다. 밥 먹고 바로 자리에 앉으면 졸리기도 하고.

동료들의 건강#

주변을 보면 비슷한 사람이 많다. 같은 팀 동료는 손목터널증후군으로 부목을 차고 출근한 적이 있다. 다른 팀 개발자는 허리디스크로 서서 일했다. 시니어는 안구건조증이 심해서 모니터를 15분 이상 못 보고 눈을 감아야 한다.

다들 젊다.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 근데 몸은 이미 경고를 보내고 있다. 문제는 개발이라는 직업 자체가 몸을 혹사하는 구조라는 거다. 앉아서, 모니터를 보면서, 손가락만 움직이는 일을 하루에 8시간 이상. 인간의 몸은 이런 식으로 쓰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습관이 되기까지#

솔직히 말하면, 위에 적은 것들을 매일 빠짐없이 지키지는 못한다. 바쁜 날에는 스트레칭을 까먹고, 마감이 다가오면 스탠딩 데스크를 올리는 것도 잊어버린다. 20-20-20 규칙은 집중하고 있을 때 지키기가 특히 어렵다. 코드에 몰입하면 2시간이 훌쩍 지나있을 때가 있다.

그래도 정형외과 다녀오기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의식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모니터 높이 하나 맞추는 것만으로도 목의 부담이 확 줄었고, 클라이밍을 시작하면서 전체적인 체력이 올라갔다.

최근에는 물 마시는 양도 신경 쓰고 있다. 개발하다 보면 물 마시는 걸 까먹는다. 커피만 마시고 물은 안 마시는 날이 있었다. 탈수는 집중력 저하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하는데, 실제로 물을 충분히 마신 날과 안 마신 날의 오후 컨디션이 다르다. 책상 위에 큰 물병을 놔두고, 하루에 최소 1리터는 마시려고 한다.

개발자로 오래 일하고 싶으면 건강 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걸 스물다섯에 목디스크로 깨달은 건 일찍 깨달은 편인지 늦게 깨달은 편인지 모르겠다. 다만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그랬다고만 말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