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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의 자유와 외로움

May 5, 2022

essaycareer

회사에서 주 2일 재택, 주 3일 출근을 하다가 프로젝트 사정으로 3개월간 풀 재택을 한 적이 있다. 사무실 이전 기간이었는데, 임시 사무실이 너무 멀어서 팀 전체가 재택으로 전환했다. 처음에 공지가 왔을 때 내심 기뻤다. "3개월 동안 출퇴근 안 해도 된다고?"

처음 일주일은 천국이었다.

출근 시간이 사라졌다. 편도 50분, 지하철 환승 한 번에 버스 한 번. 왕복 1시간 40분을 돌려받았다. 아침에 30분 더 자고, 운동복 차림으로 맥북을 열었다. 세수하고 이 닦고 바로 데스크에 앉으니까 9시에 이미 코드를 치고 있었다. 사무실에서는 9시에 겨우 도착해서 커피 타고 슬랙 확인하고 하면 실질적으로 코딩 시작이 9시 반이었는데.

점심도 직접 해먹으니까 돈이 안 나갔다. 회사 근처 식당은 만 원대인데, 집에서 라면이나 볶음밥 해먹으면 3천 원이면 됐다. 집이 조용해서 집중도 잘 됐다. 사무실에서는 옆 팀 미팅 소리, 전화 소리, 누군가 간식 먹는 소리가 배경음이었는데, 집은 고요했다. "이게 되는데 왜 출근을 해?" 하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2주차까지는 이 감각이 유지됐다.

슬슬 이상한 느낌#

3주차쯤부터 뭔가 달라졌다. 몸이 아픈 건 아닌데, 에너지가 없었다. 아침에 맥북을 열면 슬랙 알림만 있고, 사람 얼굴이 없었다. 화상 미팅은 있지만, 카메라를 끄는 사람이 많아서 프로필 아이콘만 보면서 대화했다. 화면에 동그란 이니셜만 떠 있고, 목소리만 들리는 미팅. 하루 종일 모니터에 있는 텍스트랑 대화한다는 느낌.

말을 안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사무실에서는 의식하지 않아도 말을 한다. "좋은 아침이에요", "점심 뭐 먹을까요?", "이거 잠깐 봐줄 수 있어요?", "수고하세요." 이런 사소한 대화들. 재택에서는 이게 다 슬랙 텍스트로 대체됐다. 화상 미팅 빼고는 입을 열 일이 없는 날도 있었다. 하루에 말을 10문장도 안 하는 날.

점심도 혼자 먹었다. 처음에는 편했는데, 3주째 되니까 좀 심심했다. 회사에서는 점심 때 동료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잖아. "어제 뭐 했어?", "그 드라마 봤어?", "이번 주말에 뭐 해?", 기술 이야기가 아닌 잡담. 이게 사라지니까 하루가 너무 평면적이었다. 코드-식사-코드-식사. 중간에 사람이 없었다. 생활에 질감이 없다고 해야 할까.

업무적으로도 미묘하게#

재택이 길어지면서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올라갔다. 사무실에서는 "이거 잠깐만" 하고 옆자리에서 물어보면 30초에 끝나는 질문이, 슬랙으로는 메시지를 쓰고, 상대방이 읽을 때까지 기다리고(초록불이 안 켜져 있으면 언제 볼지 모르고), 텍스트로 설명하다 보니 오해가 생기고, 다시 설명하고. 간단한 확인 하나에 5분-10분이 걸렸다.

한번은 디자인 수정 사항을 슬랙으로 논의했는데, 나는 "왼쪽 정렬"이라고 생각한 게 디자이너는 "컨테이너 내에서 왼쪽"이 아니라 "전체 레이아웃 기준으로 왼쪽"을 말한 거였다. 이걸 파악하는 데 메시지 10개가 오갔다. 스크린샷을 찍어서 보내고, "이거 말하는 거예요?" "아뇨 이게 아니라", 다시 스크린샷. 옆에 앉아 있었으면 화면 가리키면서 "여기" 하고 3초에 끝났을 텐데.

코드 리뷰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대면에서는 "이 부분은 이렇게 하면 어때?"가 자연스러운데, 텍스트로는 같은 말이 딱딱하게 느껴진다. 톤이 전달이 안 되니까. "이 부분은 왜 이렇게 했나요?"가 순수한 궁금함인지, 지적인지 텍스트로는 구분이 어렵다. 이모지를 붙여도 한계가 있다. 코멘트 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 예전에는 5초면 쓸 코멘트를 2분 동안 다듬고 있었다.

경계가 사라진다#

재택의 가장 큰 문제는 일과 생활의 경계가 없다는 거였다.

퇴근 시간이 애매해졌다. 사무실에서는 6시 반쯤 되면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고, 가방을 챙기는 소리가 나고, "수고하셨습니다" 인사가 들리고. 그걸 보면서 "나도 슬슬" 하고 퇴근한다. 물리적인 퇴근 신호가 있는 거다. 재택에서는 그런 신호가 없다. 슬랙에 마지막 메시지가 7시에 오면 7시까지 보고 있고, 8시에 오면 8시까지. "어차피 집이니까 잠깐만 더" 하다가 10시까지 일한 날도 있었다. 지하철 탈 필요가 없으니까 퇴근의 물리적 행위가 사라진 거다.

침대에서 슬랙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핸드폰으로 슬랙 확인. 밤에 자기 전에도 확인. 이건 내가 근면해서가 아니라, 혼자 있으니까 놓치는 게 있을까 봐 불안했던 거다. 사무실에서는 중요한 일이 있으면 누가 와서 말해주니까 놓칠 일이 없는데, 재택에서는 슬랙을 안 보면 진짜로 놓친다.

한 달 반쯤 됐을 때 주말에도 "월요일에 뭐 해야 하지" 생각이 자동으로 돌았다. 토요일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슬랙을 열어봤다. 주말인데. 몸은 집에 있는데 머리는 일에 가 있는 상태. 이건 출근할 때는 없었던 현상이다.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여기서는 일, 집에서는 쉼"이라는 구분을 만들어줬는데, 재택에서는 24시간 일터에 사는 셈이 됐다.

시도한 것들#

3개월 동안 나름대로 적응하려고 한 것들이 있다.

아침 루틴을 만들었다. 출근은 안 해도 "출근 의식"을 만들었다. 커피를 내리고, 옷을 갈아입고(운동복이라도 잠옷은 벗기), 책상에 앉아서 노션에 오늘 할 일을 쓴다. 이게 "지금부터 일이다"라는 신호. 잠옷 차림으로 바로 코드를 치면 일과 생활이 더 뒤섞인다.

산책을 넣었다. 점심 먹고 20분 산책. 이건 좀 효과가 있었다. 바깥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갇혀 있는 느낌이 좀 줄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나도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좀 과장이지만 진짜 그런 기분이었다.

카메라를 켰다. 화상 미팅에서 나만이라도 카메라를 켜기로 했다. 다른 사람은 안 켜도, 나는 켠다. 서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게 확실히 다르다. 표정이 보이니까 농담에 웃는 것도 보이고, 고민하는 얼굴도 보이고. 한 명이 켜면 다른 사람도 슬슬 켜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을 정했다. 6시 반에 맥북을 닫는다. 닫으면서 노션에 "퇴근"이라고 쓴다. 긴급한 게 아니면 슬랙도 안 본다. 알림도 끈다. 이건 지키기 제일 어려웠다. 지금도 가끔 어기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3개월 후#

사무실 이전이 끝나고 다시 주 3일 출근으로 돌아왔다. 첫 출근날, 팀원들 얼굴을 보는데 좀 반가웠다. 화상 미팅에서 매일 봤던 얼굴인데, 실물이 다르다. "아, 사람이다" 하는 느낌. 좀 오글거리긴 한데, 진심이었다.

풀 재택을 경험하고 나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재택이 좋기는 좋다. 집중 시간이 확실히 더 길고, 시간 효율도 좋다. 딥 워크가 필요한 날에는 재택이 압도적이다. 근데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도 알게 됐다. 슬랙 텍스트가 아니라, 옆에 앉아서 잡담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 기술 이야기가 아니라 "어제 치킨 시켰는데 맛있었어" 같은 그런 대화.

지금의 주 2일 재택이 나한테는 적당한 것 같다. 재택일에 집중해서 코드를 치고, 출근일에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이 균형이 맞는 거지,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면 다른 뭔가가 빠진다.

풀 재택을 꿈꾸는 사람들한테 "안 좋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니까. 외향적인 사람은 더 힘들 수 있고, 내향적인 사람은 오히려 편할 수 있다. 나는 내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3개월 풀 재택을 하고 나서 "나는 생각보다 사람이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 다만 외로움은 예상 못 한 곳에서 온다는 건 알아두면 좋겠다.

한 가지 더. 풀 재택 3개월 동안 코드 생산성은 확실히 올라갔다. 집중 시간이 길었으니까.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코드만 잘 치면 되는 직업이면 풀 재택이 최고였겠지만, 이 일은 결국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다. 기획자와 의도를 맞추고, 디자이너와 UI를 조율하고, 백엔드와 API 스펙을 합의하고. 이런 것들이 텍스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3개월 동안 배웠다.